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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늬 우 스*※

“한국인 부모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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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의 애타는 편지 “한국인 부모를 찾습니다”




[한겨레] 나는 김새윤이라고 합니다. 미국 이름은 티모시 프리만입니다. 나이는 37살이지요.

한국에 잘 알려져 있는 몰디브섬에 가까운 인도양의 영국령 디에고 가르시아라는 섬에서 이 편지를 씁니다. 이곳에서 나는 미 해군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가족을 찾고 있습니다. 5살이던 1974년 미국 워싱턴주 리치랜드에 있는 미국인 가정에 입양됐거든요.

저는 4살 때인 1973년 6월29일 서울 종구로 사직동에 있는 사직공원에서 홀로 남겨져, 지나가는 사람이 발견해 홀트아동복지회에 보내졌다고 합니다. 어렴풋합니다만 가족에 대해 기억하고 있어요. 남동생과 여동생이 함께 살았던 것 같아요. 어머니는 손수레를 끌고 과일을 팔러 다녔고, 아버지는 이발사였습니다. 이 정도가 기억의 전부입니다.

철들면서부터 한국에 있을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서운함을 어쩌지 못해 힘겹게 지내왔습니다. 양부모님은 엄격하고 종교적으로 매우 철저한 분들입니다. 아버지는 화학공학기술자였고, 어머니는 심리학자였어요. 입양될 때 양부모 밑에서 태어난 형이 있었고, 입양된지 5년만에 여동생도 태어났어요. 양부모님은 다시 한국에서 여동생을 입양해서 4남매가 함께 자랐지요.

13살 때부터 나는 늘 비뚤어진 행동을 일삼았어요. 스스로 ‘버림받은 아이’라는 생각에 방황했고, 양부모에게도 고통을 주려고 어긋난 길로만 갔지요. 속에서 끓어오르는 알 수 없는 분노를 삭일 수가 없었어요. 행동은 점점 거칠어졌고, 양부모님은 16살 되던 해에 나를 정신치료소에 보냈습니다. 그곳에서 18살이 될 때까지 1년 반 동안 치료를 받았습니다. 거기 있으면서 자신의 운명을 수없이 원망했습니다. ‘왜 나는 가족으로 버림받았는지’ 스스로 묻고 또 물으면서 말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레스토랑이나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어 일을 했지요, 그러다 1988년에 미국 해군에 입대했습니다. 언젠가 만나게 될 친부모에게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꿈을 이뤄서 스스로 이뤄놓은 것들을 부모님에게 자랑하고 싶었거든요.

그 해 처음으로 꿈에도 그리던 한국을 찾았습니다. 고향인 서울에는 가지 못하고 부산에 잠시 머물렀지요. 이후에도 한국에 4차례나 다녀왔지만 한 번도 서울에는 가보지 못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생김새만 보면 영락없는 한국사람인 저에게 한국말로 서슴없이 말을 걸어왔어요. 그때마다 저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고 난감한 표정만 지었습니다.

어릴 때 한국말을 다시 배우려고 한국 학교에 다니기도 했습니다. 양부모님이 사주신 한국 옷도 갖고 있습니다. 한국 음식도 무척 좋아하구요. 그렇지만 영어에 익숙해진 지 오래라서 잃어버린 모국어를 되살리지는 못했습니다.

나는 이곳 디에고 가르시아에 주둔하고 있는 미 해군 함정에서 물품 공급과 시설관리를 맡고 있습니다. 영국령인 이 섬에는 미군기지가 있습니다. 모두 3천여명이 살고 있는데 400명 정도는 군인이고, 나머지는 계약 노동자입니다. 섬은 정말 아름답고, 이곳 사람들은 친절합니다.

1998년 필리핀 여성을 만나 결혼을 했어요. 그러나 한국에 있을 가족에 대한 생각은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습니다. 지난번 근무했던 배에서는 한국인 동료가 있어서 한국의 전통문화와 예절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이번에 이렇게 용기를 내어 한국 신문에 편지를 보내 게 된 것도 이 섬에 있는 은행에 근무하는 한국 친구의 도움 덕분입니다. 이 친구도 나에게 한국 이야기를 많이 들려줍니다. 그와 얘기를 하면서 자랑스런 모습으로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점점 굳어갑니다.

나는 부모를 만나면 할 말이 너무 많습니다. 지난 30여년 동안 가슴에 품어왔던 말들을 모두 쏟아낼 것 같습니다.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어떤 분이었는지, 가족들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왜 나는 그때 혼자 공원에 남겨졌는지…

사람들은 나에게 “왜 한국의 가족을 그토록 만나고 싶냐”고 묻습니다. 그 대답은 이 편지를 읽는 모든 이들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나 역시 그렇게 대답합니다. “가족인데…내 부모와 형제들이 어떻게 보고싶지 않겠냐”고.

이 편지를 읽은 분이 내 가족들에게 나의 얘기를 전해줄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이 글은 김새윤씨로부터 받은 이 메일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박주희 기자 hop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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