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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도 땀 뻘뻘, 내게 딱이야”
[조선일보 박종인기자]
집안이 쫄딱 망해서 시작한 대장장이 인생. 호미 사가는 사람들 칭찬에, 돈버는 재미에 ‘업’이 되었다. 두드리고 담그고… 남이 하루 호미 150개 만들 때 500개를 만들기도 했다. 어느덧 43년.
주인 없는 대장간에 들어가니 진돗개 한 마리가 힐끔 쳐다보고선 다시 엎어져 잠에 빠진다. 어둑어둑한 서른 평 남짓의 실내에는 무기들이 가득하다. 가야 고분에서 나온 가지창(槍), 들기에도 무거운 날이 시퍼런 장도, 별처럼 생긴 표창, 고구려 벽화에 나온 뭉툭한 화살…. 그 옆에는 호미랑 낫이랑 각종 농기구가 쌓여 있다. 한쪽에는 화로가 벌겋게 타오르고, 그 아래엔 나무 밑동에 쇠뭉치를 박은 재래식 모루가 앉아 있다. 민속촌이나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케케묵은 모루다. 마치 그 자리에서 싹이 터 자란 양 고집스럽다. 한참 모루 사진을 찍고 있는데 뒤에 인기척이 들린다. “오셨소?”
문간에서 건장하고 잘생긴 사내가 웃고 있다. 최용진(崔鏞珍·59)씨다.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에 사는 1995년에 대장 기능 전승자 1호로 선정된 대장장이다. 환갑이 다 된 나이에도 피부가 여인네처럼 곱다. “원래 피부가 좋아요. 그런데 쇳물이 피부에 좋다고들 하는데, 그건 다 거짓말이여. 쇳가루가 얼마나 거친 건디….” 잘생긴 최씨가 말했다. 중학교 원서 쓰던 날 집안이 쫄딱 망해 시작한 대장장이 인생, 어느덧 43년을 넘었다.
“아버지가 방앗간을 했는데, 그게 망해서 괘종시계에 라디오까지 집안 값진 거 다 팔았어요. 더 팔 게 없어지던 날 아버지가 ‘대목이나 대장을 배우면 굶어 죽지 않겠다’고 하셨어요.” 소년은 그날로 충주에 있는 매형네 대장간에 가서 화로에 바람을 넣는 풀무질부터 배웠다.
“매형이 바쁘게 일하면서 돈을 버는 거 보니까 부러웠다”고 했다. “매형이 약주를 좋아했어요. 그래서 대장간을 자주 비웠는데, 그게 득이 됐어요. 일을 더 많이 하게 됐으니까.” 매형은 아예 아이에게 가게를 맡겼다. 사람들 칭찬 받고 돈 버는 재미에 자연스럽게 대장일에 빠져들었다. “사실, 이거 엄청나게 힘든 일이오. 그런데 내 적성에 딱이거든. 땀 뻘뻘 흘리면서 뭘 만드는 게 그렇게 좋아.”
1980년대까지 대장간은 호황이었다. 1970년대 중반 매형 곁을 떠나 독립한 최씨는 “남이 호미 하루에 150개 만들 때 밤새워 500개까지 만든 날도 있었다”고 했다. ‘돈’만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속도다. 벽에 숱하게 걸린 옛 무기들은 박물관 가서 사진 찍어와 재현한 것이고, 뭐 발굴됐다는 뉴스만 들리면 반드시 자료를 구해서 만들어 놓는다. 돈? 안 된다. 곳곳에 ‘무기는 팔지 않음’이라고 대문짝만 하게 붙여 놓았다. “다 사라져 가잖아요. 누군가가 만들어 놔야죠.”
그리 바빴으니 돈 좀 버셨겠다고 했다. “일 많이 하는 사람치고 부자 보셨소? 수입이 있으니까 이 일이 재미가 있었긴 해요. 큰돈은 못 벌었지만 노동자들 수고비보다는 나으니까, 부유한 거지 뭐.” 대장일을 하며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 셋 낳아 집도 사고 딸 시집 보내고 아들 둘 잘 키웠으니 자기는 부유하다는 것이다. 막내에게 일을 물려 주려고 생각해 봤는데, “그 놈이 왼손잡이라…” 하곤 입맛을 다신다.
그러다 1995년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에서 대장 기능 전승자로 선정됐다. 대장 기능 1호였다. 그 후 일년 열두 달 큰 행사에 초대 받아 관람객들에게 대장일을 ‘전승’한다. 무표정한 쇳덩이를 달구고 두드리고 담금질해 5분 만에 호미로 낫으로 둔갑시킨다.
“어떤 게 가장 힘듭니까?” “담금질이오. 화로에서 쇠를 꺼내 두드리고 그 다음에 물에 집어 넣는데, 그때 쇠의 색깔이랑 물에 넣는 시간이랑, 깊이를 제대로 못 맞추면 절대 물건 못 만들어.” 최씨가 물러터진 쇠토막 하나를 꺼내 화로에 집어 넣었다. 벌겋게 달아오른 쇠를 기자에게 주며 물에 넣어 보라고 했다. “아직, 아직, 조금만 더, 됐다, 이제 꺼내 봐요.” 그가 쇠토막을 모루에 올려놓고 망치로 내려쳤다. ‘깡’ 소리와 함께 두 토막으로 부러졌다. 강철이 된 것이다. “인생이 그런 거여. 두드려 맞고, 불구덩이에도 들어가고, 냉랭하게 식기도 하고 그러면서 단련이 되는 거여.”
그런데 그 담금질만은 전승하기가 싫다는 것이다. “사람이 그런 게 있어요. 내가 말 한마디만 해주면 도울 수 있는 건데, 그 말 한마디를 하기가 어려운 거라. 아직 덜된 거지. 나도 너무 힘들게 혼자서 터득한 거라…” 허허 하고 그가 웃는데, 욕심쟁이 웃음이 아니었다. 이미 경기도 장호원에 사는 정지호라는 대장장이를 계승자로 삼고 기술을 전승 중이라고 했다.
입에 풀칠하려고 풀무를 잡았던 소년이, 망치질 하다가 불똥이 눈동자에 들어가 죽을 뻔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청년이 되고, 쇠에 혼(魂)을 불어넣는 장인(匠人)이 된 그가 이제 자리를 후계자에게 물려주려 한다. 쇠가 가르쳐준 인생의 지혜까지 함께.
(박종인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sen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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