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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맛-☜

‘싼티’ 벗은 라면, 요리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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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룩 짭짭 후루룩 짭짭 맛있는 라면~(만화 '둘리' 삽입곡 중)’. 라면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랴.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먹는 대중음식. 출출할 때, 마땅히 생각나는 메뉴가 없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인스턴트라면이다.

저렴한 가격에 흔하게 접할 수 있어 ‘끼니때우기’용 이란 인식이 강하다. 그런 인스턴트라면이 요즘 '라스토랑(라면+레스토랑)'란 신개념의 전문점 등이 등장하면서 '요리'로 재탄생하고 있다. 라스토랑에선 인스턴트의 싸구려 이미지를 벗고자 재료와 맛에서 고급화, 다양화를 꾀하는 중이다. 해산물사골육수로 끌어들이고, 한국인이 거부하기 힘든 매운맛을 더욱 강화하는 등 레시피에 변화를 주는 식이다.

라면스프를 과감히 버리고, 자체 개발한 스프와 다대기를 사용하거나, 떡·만두· 콩나물 등의 기존 토핑에서 벗어나 새우·튀김·전복 등 고급 재료를 쓰는 파격성을 띄기도 한다. 파스타나 일본식 생라면 부럽지 않은 외관과 맛으로 재탄생한 인스턴트라면전문점을 찾았다.


라면전문점 언제부터?

인스턴트 라면의 묘미는 ‘누구나 쉽게 끓일 수 있다’는 것. 하나 더 붙이자면 ‘대충 끓여도 맛이 난다’는 것이다. 라면은 팔팔 끓는 물에 스프와 면을 넣고 익히면 된다. 특별한 노하우나 기술이 필요한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언제든지 끓여먹을 수 있는 라면을, 슈퍼에서 파는 가격의 몇 배를 내고 밖에서 먹는다는 것은 사치처럼 느껴졌다. 변변한 라면전문점이 없었던 이유다.

라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1981년. 라면전문점 틈새라면이 명동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부터다. ‘빨계떡’은 라면스프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강력한 매운 맛을 냈다. 이후 라면전문점을 표방하는 음식점들이 하나 둘씩 생겼다.

맹물이 아닌 다시마 · 바지락 등을 기본으로 뽑은 해물육수와, 사골 등으로 만든 국물을 사용했다. 계란은 물론이고, 새우·홍합·차돌박이·순두부 등의 이색재료를 곁들였다. 풍성한 맛과 영양가 높은 재료는 라면만 먹기에는 뭔가 심심하고 영양상의 부족함을 느꼈던 이들의 갈증을 해소해줬다. 줄 서는 라면집이 생긴 것도 이 때부터다.

라면전문점의 특징은?

홍대 앞 라면전문점 일공육(106)은 라면이 모두 5000원이다. 인천의 맛좀볼래의 ‘알탕이었더라면’은 4000원, 목동 라면레스토랑 라젠의 ‘달인특면’은 1만원이다. 일반 동네 분식집 라면이 2000원대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 비싸다. '도대체 무얼 넣고 어떻게 만들었길래?' 라는 의문이 생긴다. 라면집 사장들은 “집에서 끓여먹는 라면, 분식집 라면과 질과 양, 맛에서 확연히 다르다. 비싸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면·스프·물 이라는 공식화 된 레시피에 구애 받지 않는다. 자신이 내고자 하는 고유의 라면맛을 위해 여러가지 변화를 모색한다.

사골육수로 라면을 끓이는 집이 있는가 하면, ‘육수의 진한 맛은 라면의 깊은 맛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해물육수를 고집하는 곳도 있다. 몇몇 집은 라면스프의 양을 대폭 줄이고, 대신 주인이 직접 만든 양념장으로 맛을 내기도 한다. 라면전문점마다 각자의 노하우와 레시피로 고급화를 추구하고 있었던 것. 하지만 공통점은 있었다. 이들은 모두 기름에 튀겨 건조한, 이른바 인스턴트면(유탕면)을 사용한다.


▶육수

대부분 해물이나 고기 등을 우려낸 육수에 라면을 끓인다. 이곳에서 파는 라면이 일반 라면에 비해 맛이 좋고, 비싼 이유 중의 하나다. 목동의 라젠에선 사골·잡뼈·양지머리를 고아 만든 사골육수, 바지락 · 새우 ·다시마 등을 넣어 우린 해물육수를 각각 만들어 쓴다. 사골육수는 걸쭉하고 고소한 맛의 ‘삼선우육라젠’에, 해물육수는 맑고 담백한 느낌의 ‘왕새우해물라젠’에 각각 사용한다.

‘전복라면’으로 유명한 덕이푸드는 사골만 우린 육수에, 황태· 새우·게·전복껍데기를 넣어 우린 해물육수를 반반씩 섞어 만든다. 을지로 3가의 꼬불꼬불라면의 배근(44)사장은 “맛있는 라면의 비결은 육수에 있다”면서 “황태머리·다시마 등을 고아 만든 물을 사용한다. 집에서는 흉내 낼 수 없는 맛”이라고 말했다. 인천의 맛좀볼래에서는 파·양파 등의 채소만으로 우려낸 다싯물을 쓴다.

▶토핑

콩나물·떡·만두 등으로 한정되었던 토핑은 튀김 · 전복 · 바지락 · 어묵· 생선알 · 차돌박이 · 순두부 · 메생이 등으로 다양해졌다. 라면전문점 라면이 비싼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다양한 재료를 넣어 맛을 좋게 하려는 이유도 있지만, 라면만 먹었을 때 부족하기 쉬운 영양소를 각종 채소와 해산물, 두부나 고기 등을 같이 먹으며 해소한다는 의미도 있다.

라면 위에 듬뿍 얹어주는 재료는 보기만 해도 넉넉함에 배가 부르다. 홍대 일공육 라면의 김미영(45)사장은 “처음엔 망설이지만 막상 먹고 나면 ‘이렇게 팔아도 남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들어가는 재료만 본다면 라면이 고급 면요리에 뒤질 이유가 없다”며“그런데 파스타나 일본 생라면은 값비싸게 주고도 당연하다고 여기고, 왜 인스턴트 라면은 3000원만 넘어도 꺼려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라젠의 라면가격은 7000원대. 인스턴트 라면값이라고 상상조차 어려운 가격이다. 이유는 풍부한 토핑에 있다. ‘달인특면’(사골육수)에는 왕새우튀김· 차돌박이·명란·새우튀김·감자튀김·닭가슴살튀김 등 기존 라면에서 볼 수 없었던 재료를 함께 조리한다.

역삼역의 주면은 모짜렐라치즈·홍피망·양배추 등의 양식재료를 얹은 ‘외면’을 팔고 있다. 일공육 라면의 ‘0라면’(일명 장금이 라면)은 순두부·메생이·아구· 홍합· 오징어· 쭈꾸미 · 새우 · 미역· 숙주 ·게 ·가오리살 ·소라 등이 풍부하게 나온다.

맛좀볼래의 ‘알탕이었더라면’은 특이하게 생선알이 들어간다. 명란이 많이 들어가 있어 씹는 맛이 있고, 국물도 시원하다. ‘전복라면’에는 게 ·새우· 홍합· 미더덕에다 검지손가락 길이 만한 전복 하나가 들어있다.

▶스프

맛있는 라면. 하지만 기름에 튀겼다는 생각에, 화학조미료가 많이 든 스프 때문에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몇몇 라면집들은 라면스프를 최대한 적게 쓰거나, 아예 쓰지 않는다. 맛좀볼래의 김병삼(43)사장은 “손님들 입맛이 까다로워졌다. 라면스프로만 끓여선 경쟁력이 없다”며 “액체형·젤형· 과립형 등 다양한 스프를 직접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라젠은 라면스프를 천연조미료로 대신하고 있다.

한편 ‘라면스프 없이는 입맛 당기는 맛이 나지 않는다’며 라면스프를 부분사용 하는 집도 더러 있다. 꼬불꼬불라면은 라면스프와 고추가루씨·마늘가루·생강가루·다시마가루·새우가루로 만든 스프를 1대1 비율로 섞어 사용한다. 일공육 라면 역시 주인이 만든 스프와 라면스프를 반반씩 섞는다. 강남역 부근의 모퉁이라면은 라면스프를 모두 넣은 뒤, 우유·고추가루·다진마늘·새우가루 등으로 만든 다대기 한 숟갈을 또 넣는다.

▶ 면

사용하는 면도 제 각각이다. 라면집 사장들은 다들 면에 대한 각자의 소신이 있다. 자신이 추구하는 맛을 내기 위해 각기 다른 라면회사제품을 사용한다. 나름 ‘이 면을 사용해야 하는 결정적 이유’를 한가지씩 가지고 있다.

덕이푸드는 ‘쫄깃한 맛이 강하다’는 이유에서 신라면을, 맛좀볼래에서는 ‘잘 불지 않는다’며 삼양 사리면을 택했다. 모퉁이라면은 ‘기름기가 적다’는 생각에 삼양 파워라면을 쓴다. 면과 스프의 궁합 때문에 면을 달리 쓰는 곳도 있다. 꼬불꼬불라면에서 파는 ‘너구리오뎅라면’은 너구리우동 특유의 맛을 살리기 위해 다른 라면은 모두 신라면을 사용하지만, ‘너구리오뎅라면’만은 너구리면을 쓴단다.

방수진 기자 [foma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