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1억원 간호사 의사들을 거느리다
[조선일보 신지은기자]
청년 실업이며, 구조 조정, 자영업 불경기로 고생하는 한국 경제. 하지만 기회는 밖에도 있다. 취업·창업의 무대를 세계로 넓혀 새로운 기회를 잡은 사람들이 우리 주변엔 의외로 많다. 평범한 사람들이 펼치는‘글로벌 인생’의 성공담이 여기 있다.
의사를 채용하는 간호사, 의사보다 월급을 많이 받는 간호사, 의사보다 직급이 높은 간호사…. 김원숙(45)씨가 바로 그런 ‘수퍼 간호사’다. 지난 9년간 중국·베트남·홍콩·싱가포르 등 아시아를 주무대로 활동하다 지난달 미국 코넬대학병원으로 옮겨 왔다. 세계 최고의 의료진 사이에서 자기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어서였다.
그는 “해외에선 간호사도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능력이 있느냐에 따라 연봉이 천차만별로 차이 나고, 고속 승진도 가능하다”며 “여기서 인생의 승부를 걸어 보겠다”고 말했다.
10년 전만 해도 그는 국내의 한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평범한 간호사 중 하나였다. 그는 “적당한 스트레스와 소박한 월급, 퇴근시간만 되면 즉각 집으로 달려가는 생활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던 어느 날 IMF 구조조정의 여파로 월급이 절반으로 뚝 깎여 버렸다. 게다가 나이는 30대 후반. 당시 간호사 나이로는 퇴직 연령에 가까워 구조조정 1순위였던 것이다.
그는 한 번도 생각지 않던 모험을 결정한다. 제삼국행(行). ‘한국에만 병원이 있냐. 간호 기술이야 만국 공통이니 해외에서 일자리를 찾자’고 마음먹었다. 그는 “당시 영자(英字) 신문에 해외 간호사를 찾는 광고가 많았다”고 했다.
영어로 원서 써서 지원하고 떨어지기를 수십 차례. 1998년 말 마침내 국제적 응급의료 지원회사인 ‘인터내셔널 SOS’에서 “채용됐다”는 편지를 받고 베트남으로 날아간다. 월급은 IMF 이전 받던 국내 연봉과 비슷했고, 숙박시설 제공, 건강보험료 지급 등의 복지조건이 더해졌다. 물가는 한국보다 쌌다. 삶의 질이 높아진 것이다.
김씨는 “나이 많다고 차별받지 않고, 의사만큼 전문성을 인정해 주니 2배, 3배로 능력이 생기더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8년간 같은 회사 소속으로 태국·홍콩·싱가포르·중국 등을 옮겨 다니며 ‘문어 다리(octopus) 미스 김’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다리가 8개 달린 것처럼 열정적으로 일한다는 뜻이다.
말이 간호사지 아시아권의 의사들을 직접 채용하는 ‘총괄 매니저’ 직함도 갖고 있다. 당시 그의 연봉은 한국 돈으로 1억원을 훌쩍 넘겨 웬만한 의사보다도 높았다.
김씨를 가장 고생시킨 문제는 영어였다. 발음을 못 알아들어 손짓 발짓으로 의사 소통을 했다. 한 번은 ‘환자 발에 가시가 박혔다’는 말이 영어로 떠오르지 않아 급히 펜을 찾아 그림을 그리기까지 했다. 그는 “피곤해서 쓰러질 것 같던 매일 밤 낯선 영어 단어들을 꾸역꾸역 외우며 조금씩 극복해냈다”고 했다.
김씨가 강조하는 것은 “국제 간호사에 대한 환상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국제간호사자격증 ▲해외 근무 경력 ▲영어 구사 능력 ▲국제 NGO(비정부기구) 자원봉사 경력 등을 갖췄다면 국제간호사로서 자신을 훌륭하게 세일즈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지명도가 높은 병원만 좇지 말고 자기가 일을 편안하게 소화해낼 수 있는지도 고려하라”며 “무턱대고 선진국을 고집하기보다 그 나라 물가와 자신이 받을 수 있는 연봉을 비교해서 선택하라”고 조언했다.
(신지은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ifyouar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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