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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기' 영웅 김일의 생애 | |
2006년 10월 26일 (목) 13:03 YT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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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오늘 타계한 고 김일 옹은 지난 1960대부터 70년대까지 배고프고 암울하던 시절 '사각의 링'에서 '박치기 왕'으로 불리며 어른에게는 즐거움을, 어린이에게는 희망을 심어준 '국민적 영웅'이었습니다. 고인의 생애를 황보선 기자가 되짚었습니다. [리포트] 1929년 전라남도 고흥 섬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큰아들로 태어난 김일. 소년시절부터 180cm가 넘는 장신에 건장한 체격으로 씨름대회를 휩쓸곤 했지만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우며 평범한 청년기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한 잡지를 읽은 것이 그만 그의 운명을 바꿔놓게 됩니다. 당시 세계챔피언으로 명성을 떨치던 프로레슬러 '역도산'의 기사였습니다. 그는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일본행을 결심합니다. 27살이던 1956년 10월, 일본 밀항에 성공하지만 적발돼 1년간 일본 형무소 생활을 하게 됩니다. 김일은 형무소에서 역도산에게 끊임없이 편지를 보냈고, 그의 열정에 탄복한 역도산의 보증으로 형무소를 나왔습니다. 김일은 곧바로 역도산 문하생 1기로 입문해 박치기 기술을 연마하는 등 프로레슬링 선수가 되기 위한 갖가지 고된 훈련을 받기 시작합니다. 이듬해인 1958년에는 '오오키 긴다로'라는 이름으로 데뷔합니다. 1963년 9월 스승 역도산이 칼에 찔린 날, 김일은 미국 LA에서 생애 최초로 WWA, 즉 세계레슬링협회 제23대 챔피언 타이틀을 따냅니다. 2년 뒤, 1965년 한국으로 건너온 김일은 무려 3천여 회에 걸쳐 국내외 경기를 치르며 세계 타이틀을 20여 차례 따냈습니다. 라이벌인 안토니오 이노키, 압둘라 부처와는 매번 머리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으며 혈전을 치렀습니다. 사마귀처럼 머리를 뒤로 젖혔다 돌진해 박치기로 세계의 레슬러들을 쓰러뜨린 그는 국민의 영웅이었습니다. [인터뷰:황근오, 고 김 일 의형제]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용기를 줬고 우리한테 이런 영웅이 있구나 하는 자부심을 주었던 분이었습니다." 1980년 5월, 제주도 경기를 마지막으로 치른 그는 1989년 고혈압으로 쓰러진 뒤, 일본에서 투병생활을 하다 1994년 1월 휄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귀국했습니다. 박치기 후유증으로 생긴 뇌혈관 질환과 당뇨, 고혈압에 거대결장으로 대장을 잘라내는 수술을 받는 등 기나긴 투병생활을 해왔습니다. 이런 투병생활 속에서도 1965년 이른바 '레슬링은 쇼'라는 발언 파동 이후 40년 넘게 외면했던 동료 레슬러 장영철 씨와 만나 화해하기도 했습니다. 현실의 링에서 보여준 그의 활약상은 이제 전설로 남게됐습니다. YTN 황보선입니다. [저작권자(c) YTN & Digital YTN.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황보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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