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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늬 우 스*※

'대박 영화'를 보면 대선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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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영화'를 보면 대선이 보인다

 

 

[고승우의 미디어워치]

[미디어오늘 고승우·논설실장]

영화는 신문, TV보다 거리가 좀 멀다. 비디오 테이프를 빌리는 것이 아니라면 상영관을 찾아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돈을 지불하는 과정을 거쳐야 접할 수 있는 매체다. 이유가 무엇이든지 강한 흡인력이 있는 영화라야 관객이 몰린다.

영화는 사람들이 시간과 돈을 투자해 찾아간다는 점에서 대중의 성향, 다시 말해 민심을 반영하는 주요한 매체다. 영화를 통해 일반인의 관심이 무엇인지, 또 어떤 것을 원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새삼스런 이야기지만 영화 한 편을 1000만 명 이상이 관람한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면 성인 인구의 절반이 한 영화를 찾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이 수많은 사람들을 한편의 영화로 끌어들였을까?

'대박' 친 한국영화의 함의

수많은 영화 제작진들이 영화를 만들 때는 큰 기대를 건다. 그러나 그런 기대가 충족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분명 확실하다고 보았는데 허탕을 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중의 기호는 변화무쌍하다. 어떻게, 어느 방향으로 변할 지 모른다. 그러나 대박을 치는 영화는 대중이 원하던 것을 충족시킨 경우다.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거나 아픈 곳에 약을 발라주는 식의 영화만이 다수의 사랑을 받는다. 대중을 끌어당기지 않는 영화는 상영관이 파리만 날리게 된다.

▲ 영화 '왕의 남자'(왼쪽)와 '괴물'
영화는 매력적인 감성적 미디어다. 영화 관람은 특성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관객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견해를 바꾸기보다 자신의 주관성을 더 강화하려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견해에 호의적이거나 긍정적인 정보를 듣고자 한다. 자신의 견해와 다른 정보에 대해서는 받아들이지 않거나 저항하려 한다. 결국 개개 관람객이 영화를 통해 받아들이는 것은 관람객의 성장배경이나 그의 필요에 의해 결정된다.

지난 수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대박을 친 국산영화는 JSA, 쉬리, 실미도, 태극기휘날리며, 웰컴투동막골, 왕의 남자, 괴물 등이다. 이들 영화에는 많은 내용이 담겨 있지만 유사한 점이 몇 가지 있다. 분단시대, 권위주의 시대에 금기시되던 내용들이 주요 주제로 다뤄져 있다. 정부의 무능, 외세 문제도 정색을 하고 다뤘다. 주인공들은 도식적인 영웅상과는 거리가 멀다. 분단과 독재, 외세 등에 의해 신음하던 보통사람들이다. 고정관념에 도전하고 그것을 깨뜨린 영화들이다.

영화 관객 입장 1000만 명 시대를 연 것은 우리 사회 전반의 민주화 진전과 때를 같이 한다. 이들 영화에 많은 관객이 몰린 것은 반세기 넘게 지속된 비정상적 구조 속에서 겹겹이 쌓인 민중들의 카타르시스 현상이다.

과거집착 리더십은 열린시대에 경쟁력 없다

2007년 대선이 다가오면서 대선 후보에 대한 대중매체의 관심이 대단하다. 그들의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쓴다. 특히 최근 북핵 실험 과정에서 드러난 대선 후보군의 모습을 샅샅이 보도했다. 그 결과 어떤 후보가 냉전시대의 체질을 벗어났는가, 새로운 시대에 대처하는 비전이 있는가 하는 것이 잘 소개됐다.

우리 국민은 험난한 세월을 살아온 탓에 위기 대처 능력이 탁월한 점을 누구나 손꼽는다. 외국에서 아무리 한반도 전쟁 임박을 외쳐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그것을 안보 불감증으로 이야기하나 정곡을 찌른 것 같지 않다. 우리 국민의 정세 통찰력이 뛰어난 것을 읽지 못해 내린 잘못된 진단이다. 엄청난 시련 속에 민주화를 달성한 국민답게 현상 파악과 미래 통찰이 뛰어나다. 이런 점이 내년 대선에서 대세를 결정할 것이다.

대선에선 유권자가 미래를 보고 표를 던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유권자가 그리는 미래는 어떤 것일까? 그 해답의 실마리는 '대박' 친 우리 영화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유권자가 부담 없이 받아들이거나 원하는 가상의 세계가 JSA, 쉬리,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투 동막골, 왕의 남자, 괴물 등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들 영화 속에 담긴 크고 작은 이야기 가운데 어떤 것에 주목하느냐는 개개인의 성향에 좌우된다. 냉전시대, 권위주의 시대, 외세 발호 시대가 어떻게 될 것이냐에 대한 판단도 각자의 자유다. 오늘날 잘 나가는 일부 대선 후보들이 '수구 꼴통'과 같은 언행을 하는 것도 다 자기 체질이나 계산에 따른 것이다.

세상은 크게 변하고 있다. '아차' 하면 개인이나 국가도 뒤로 쳐진다. 2007년 이후 5년은 너무도 중요하다. 중국, 인도가 급성장하는 등 국제정세가 급변하는 가운데, 우리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선을 넘게 되느냐, 양극화 문제는 어떻게 될 것이냐, 통일문제는 어떻게 될 것이냐 등등 헤아릴 수 없이 중요한 문제들이 줄을 지어 서있다. 이런 시대에 오늘과 과거에 집착하는 리더십은 적절치 않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해외를 찾는데 이는 그들의 눈높이가 세계로 향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단, 독재, 외세는 닫힌 사회에서 번성하는 독버섯이다. 열린사회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시대착오적 존재다. 우리의 대박친 영화들은 대부분 열린사회를 지향하는 그런 주제다. 많은 관객이 그런 영화에 몰린다는 것은 유권자들이 열린 사회를 원하고 있다는 징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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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우·논설실장, konews8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