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벨로, 무한 가능성을 실어 나른다
[한겨레] 선 굵고 명암 뚜렷한 화가 오윤의 회고전을 챙겨보러 느지막이 과천을 찾았다. 그림 앞에 선 내 몸은 화폭에 빽빽이 들어선 기층 노동자의 육체 마냥 땀에 젖었다. 작가의 예술세계에 깊이 감화돼 온몸이 후끈 달아올랐기 때문이라고 우기고 싶지만, 실은 출발지인 봉천동과 목적지인 과천 사이를 자전거로 이동한 탓이다. 이 정도 거리의 자전거 주파는 자출사(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에겐 화제도 되지 않지만 남태령 마(魔)의 고개는 만만치 않았다.
지난 몇달여를 통틀어 언론의 뒤늦은 집중 조명은 단연 자전거에 쏟아지지 않았을까? 78일간 6400㎞의 미 대륙을 횡단한 어느 의지의 사내가 쓴 에세이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이 상반기 서점가의 폭풍을 일으키더니, 일간지 주간지는 물론 밤 9시 뉴스마저 자전거 출퇴근을 비중 있게 소개했다. 계속 앉아 출퇴근할 수 있는 점, 고유가 시대 친환경적 이동 수단이라는 점 등이 보도의 요지다. 그러나 자전거 관련 취재는 한국인 체형에는 딱히 어울리지 않게 쫙 달라붙는 형광 무늬 타이즈 복장과 그것도 모자라 머리 위로 큼직한 새부리 같은 안전모를 얹힌 직장인과 대형 로드바이크의 모습을 담는다. 이와는 달리 잔잔한 호응을 얻는 부피 작은 자전거도 있다.
네이버는 11월초 ‘이 달의 대표 카페’ 코너에 미니벨로 동호회를 포함시켰다.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의 필자 홍은택의 자전거도, 과천 이동시 내가 사용한 자전거도 모두 미니벨로다. 미니벨로(mini velo)란 이름대로 바퀴 지름 20인치 이하의 작은 자전거를 통칭한다. 앞서 네이버 미니벨로 카페명 ‘내 마음 속의 미니벨로’는 일본과 국내에 자전거 선풍을 일으킨 미야오 가쿠의 본격 자전거 만화 <내 마음 속의 자전거>(원제: <나미키바시 거리의 자전거포>)로부터 따온 것일 게다. 만화에서 왜소한 체형 조건으로 육상부 기대주로 떠올랐던 주인공 나츠미는 27인치 사이클을 추월하는 16인치 미니벨로에 빗대어 묘사된다.
만화적 과장 아니냐고 반문할 지도 모르겠다. 소형 바퀴라는 숙명 덕에 미니벨로가 뒤집어쓰는 가장 큰 오해가 스피드와 관련된다. 한마디로 바퀴가 작은데 속도가 나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형태 자전거 최고속 기록은 놀랍게도 미니벨로가 갖고 있다. 1986년 시속 82.5km란 기록의 주인공은 미니벨로 알렉스 몰튼 AM7을 개조한 자전거로 전해진다. 내 경우도 동일한 거리(봉천동↔광화문)를 26인치 자전거와 20인치 미니벨로로 비교 주행한 결과 예상과는 달리 미니벨로가 5분 일찍 당도한 경험이 있다.
속도란 바퀴의 크기가 아니라 기어비에 달려있다. 더욱이 미니벨로는 공기저항이 적고 차 막힘이 심한 대로변에서 높은 적응도를 보여 정체 차량 사이로 민첩하게 길을 내는 장점이 있다. 또한 미니벨로의 차별성으로 거론되는 접는 기능은 대중교통 연계에 유연하다. 자전거를 보도하는 언론의 형식은 뻥 뚫린 한강 자전거 도로를 상쾌하게 내달리는 모습만 포착할 뿐, ‘덩치 큰 자전거’가 그 후 어떻게 거치되고 보관되는 지는 누락한다. 접는 미니벨로(물론 접히지 않는 미니벨로도 있고, 정반대로 접히는 큰 자전거도 있긴 하다)는 실외 보관소에 묶어둘 필요 없이 실내에서 또는 장거리 출장 시 몸에 지닐 수 있다. 요컨대 미니벨로 중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삼각형’으로 칭송되는 스트라이다(strida)는 숙련자의 손에서 5초 안에 접힌다.
그런데 여기서 진솔하게 집고 넘어갈 대목도 있다. 언론 보도를 접하는 독자와 실제 관련 동호회가 바라보는 미니벨로 사이에는 큰 인식의 격차 혹은 가격의 편차가 존재한다.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의 필자는 미국 횡단 때는 미국인 친구로부터 3백만원이 넘는 몰턴이라는 미니벨로를 빌려서 몰았다. 만화 <내 마음 속의 미니벨로>는 자전거 전문 만화라는 공적을 쌓았지만 명품 소개에 치우쳐 외산 럭셔리 자전거 ‘지름신 강림’에 일조했다는 게 정설이다. 일반인과 마니아 사이에서 미니벨로는 전자에게 그것이 실용재면 후자에게는 과시재의 성격이 없지 않다. 후자의 미니벨로는 경제학자 베블렌 말대로 ‘비싸기 때문에 아름다운’ 과시적 소비의 측면이 있다. 그러나 연비 교통비 절감, 체력증진, 거기에 ‘간지’까지 더해주는 과시재인 미니벨로는 장기적으로 남는 장사다. 하물며 선진국에 비해 이 작은 녀석의 가능성을 외면해온 우리의 오랜 무관심을 돌이켜 본다면 더더욱.
글 반이정 미술평론가 dogstylist.com
사진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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