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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가면서★

은퇴 귀농부부 생활비 7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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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먹거리 자급자족… 생활비 월70만원

[조선일보 김신영기자]

설악산서 내려오는 계곡 물이 운치 있게 흐르는 강원 양양군 현남면의 응달마을. 두 그루 커다란 감나무 아래 배추와 무가 보기에도 탐스럽게 자라고 있다. “어머, 이 무 굵어진 것 좀 봐요. 가물어 농사가 힘들다는데 어쩜 배추도 너무 통통하게 잘 자랐네….” 장화를 신고 맨손으로 배추밭에서 잡초를 솎아내는 김정영(63) 백영자(61)씨 부부. 이들은 농가 9채가 모여 사는 이 마을의 신출내기다.

올해 첫 농사지만 밭에 가득한 콩, 배추, 가지, 무, 호박 같은 야채를 보면 ‘진짜 첫 농사일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김씨는 서울에서 한 기업체 관리직으로 일하다 2001년 퇴직했다. 그 후 별다른 직업 없이 그간 살던 서울 서초동을 떠나 아들 내외가 사는 분당 정자동에서 살았다. 며느리의 육아를 돌보던 중 지난해 큰손주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불현듯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은퇴하면 고향에서 살고 싶다’던 오랜 바람이 생각났어요. 손주가 학교에 다니니 숙제다 학원이다 바빠지더군요. 우리 손길이 이제 필요 없을 것 같았어요. 제가 약 20년 전부터 꿈꾸던 일을 실행에 옮길 때라는 결심을 굳혔죠.”

황무지나 다름 없던 800평 대지를 구입하는 것으로 김씨 부부의 ‘귀향 프로젝트’는 시작됐다. 작년 5월 양양으로 내려가 10월 집이 지어지기까지는 지역 주민들과 친분도 익힐 겸 마을회관의 남는 방에서 지냈다. 땅 고르고 지하수 뽑아 수도를 설치한 후 30평 스틸 하우스(steel house·철강 건물) 짓는 데 1억3000만원이 들었다. 비용은 퇴직금으로 충당했다.



새 집에서 겨울을 보내고 올해 봄 첫 농사를 시작하면서부터 부부는 ‘딴 생각’ 할 틈 없이 분주해졌다. 귀향을 생각하며 틈틈이 농촌진흥청 등에서 진행하는 ‘은퇴자 귀농 프로그램’을 수강해 두었지만 ‘실전’에 돌입하자 예기치 않았던 문제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뒤돌아서면 잡초가 자란다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제초제를 안 쓰려니 여름에는 하루 종일 잡초 뽑느라 정신을 못 차렸죠. 콩 모종을 두둑이 아닌 사람 다니는 이랑에 심는 바람에 모조리 옮기기도 하고 여름 내 기른 옥수수는 멧돼지에게 몽땅 빼앗기질 않나….”

씨 뿌리고 풀 뽑고 수확하며 몸을 움직이는 사이 김씨는 헬스클럽에서 그토록 땀을 빼도 제자리 걸음이던 체중을 6㎏이나 줄였다. 소득도 있었다. 끈질기게 그를 괴롭히던 비염이 사라졌고 맑은 공기와 함께 채식 중심으로 식생활도 변했다. 당연히 건강해졌다.

농장서 웬만한 먹거리를 자급자족하다 보니 생활비는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쌀이나 양념같이 길러먹을 수 없는 식료품을 구입하는 데 한 달에 약 10만원이 나간다. 동네 사람들의 크고 작은 일상사를 챙겨야 하는 시골의 특징 탓에 월 경조사비로 약 10만원을 지출한다.

수도권서 일어나는 경조사에 대해서는 온라인으로 경조사비를 입금하거나 아들에게 대신 내도록 ‘지시’한다. “네 결혼식 때 도움을 받았으니, 네가 갚아라”는 원칙에 아들도 흔쾌히 아버지 친구들의 경조사를 챙기고 있다.

농촌으로 내려간 후 벗들과의 관계는 더 돈독해졌다. 저녁에 만나 고기와 소주를 먹던 ‘뻔한 코스’는 벗어난 지 오래다. 대신 친구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며 김씨네 농가를 찾는 일이 잦아졌다.

지역난방이 대부분인 도시와 달리 농촌에서는 난방비 지출이 생활비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서울을 떠난 첫해 이들 부부는 아파트 살던 시절 습관대로 반팔을 입어도 후끈할 정도의 난방을 했다.

그나마 저렴하다는 심야전기 보일러를 설치했음에도 첫 달 난방비가 무려 25만원이나 나왔다. 깜짝 놀란 부부는 옷을 따뜻하게 껴입고 집안 온도는 낮추는 ‘농촌식 겨울나기’를 통해 난방비를 13만원까지 낮췄다.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 덕에 여름에는 에어컨이 필요 없어 전기료가 5만원 정도로 뚝 떨어진다.

“농사 비용은 별로 들지 않아요. 배추 모종 200개가 1만2000원밖에 하지 않을 정도죠. 이웃과 친해지면 콩이나 옥수수 씨앗은 거저 주기도 하고요. 농촌서 살려면 돈보다는 부지런함이 최우선 덕목입니다. 조금만 게으르면 밭이 금세 망가져버려요.”

김씨 부부의 기상 시간은 오전 4시. 신문이 들어오지 않는 외진 곳이라 라디오로 세상 소식을 듣고 체조를 한 후 밭을 일구러 나간다. 작은 동네다 보니 지역 주민들과 적극적으로 친해지려는 마음가짐도 필수다. 백씨는 그래서 한동안 나가지 않던 반상회도 꼬박꼬박 참석하고 마을회관서 여는 각종 행사에도 얼굴을 자주 내비치려고 힘쓰고 있다.

“내가 처분하고 온 부동산이 얼마나 올랐나, 다른 이들은 도시에서 어떤 생활을 누리며 사나…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머리만 복잡해져요. 맑은 자연 속에서 마음을 편하게 먹고, 떠나온 곳을 뒤돌아보지 않는 것이 은퇴 후 농촌 생활의 원칙입니다.”

(김신영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sk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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